
“또 실패했어요.”
정은 씨는 3년째 새해 다짐을 반복하고 있다. 매년 1월 1일, “올해는 꼭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하루 30분 책 읽고, 명상하고…”라는 빼곡한 계획표를 작성한다. 실행 2주 차까진 괜찮다. 문제는 3주 차다. 어느 날 회사에서 늦게 들어온 날, 작은 균열이 생긴다. 그 균열은 급속도로 커져서 결국 1월이 가기 전에 계획은 전면 폐기된다.
“저는 의지력이 약한가 봐요. 정말 하고 싶은데, 매번 실패하니까 자존감까지 떨어져요.”
맞는 말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 8년 차 행동심리 상담사인 이준호 전문가를 만나 직접 물어봤다.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 정은 씨 같은 사례를 많이 보셨을 것 같다. 의지력이 문제인가?
“전혀 아닙니다. 의지력은 마치 근육과 같아요. 아무리 강한 사람도 하루 종일 근육을 쓰면 지치죠. 의지력도 마찬가집니다. 문제는 의지력이 아니라 ‘환경’이에요.”
이 전문가는 의지력이 부족해서 습관에 실패한다는 생각 자체가 오해라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심리학회(APA)가 발표한 2025년 연구에 따르면, 새해 다짐의 88%가 2월 중순 이전에 중단된다. 흥미로운 점은 중단 이유를 분석했을 때 “의지력 부족”을 꼽은 비율은 23%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77%는 환경적 요인, 불명확한 목표 설정, 피드백 부재 때문이었다.
— 그러면 환경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면 답이 나옵니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설계됐어요. 매일 아침 운동할지 말지 고민하는 행위 자체가 뇌에는 큰 에너지 소비입니다. 이 고민을 자동화하면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아낄 수 있습니다.”
이른바 ‘습관 루프’ 이론이다. 1999년 MIT의 앤 그레이빌 박사팀이 쥐 실험에서 발견한 원리인데, 뇌는 단서(cue), 행동(routine), 보상(reward)의 3단계 고리를 형성한다. 이 고리가 반복되면 기저핵(basal ganglia)이라는 뇌 영역이 이 과정을 통째로 저장해 버린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할까 말까’를 고민하지 않고 자동으로 행동하게 된다.
2012년 《Diabetes Care》 저널에 실린 연구는 이 원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뇨 환자 214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게는 “매일 걷기 운동을 하라”고만 말했다. 다른 그룹에게는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린 후, 신발을 현관문 앞에 놓고 5분간 걷기 운동을 하라”고 구체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단서를 제공받은 그룹이 운동을 지속한 비율은 74%였다. 그렇지 않은 그룹은 38%. 환경적 단서 하나가 운동 유지율을 거의 2배로 높인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환경을 설계해야 하나?
“크게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마찰을 줄이고, 시각적 단서를 심고, 즉각적인 보상을 만드는 겁니다. 하나씩 설명하죠.”
1. 마찰을 줄여라 – 뇌의 게으름을 포용하라
런던대학교(UCL) 필리파 랠리(Phillippa Lally) 박사팀이 2009년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에 발표한 유명한 연구가 있다. 새로운 습관이 자동화되는 데 평균 66일이 걸린다는 그 연구 말이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간과하기 쉬운 핵심이 하나 있다. 실천 난이도가 습관 형성 속도에 미치는 영향이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각각 다른 난이도의 행동을 반복하게 했다. A그룹은 “매일 아침 물 한 잔 마시기”라는 극히 쉬운 행동, B그룹은 “매일 저녁 30분 조깅”이라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행동을 각각 과제로 받았다. A그룹은 평균 21일 만에 행동이 자동화됐다. B그룹은 80일이 지나도 절반 이상이 습관을 정착시키지 못했다. 결론은 명확하다. 첫 습관은 반드시 ‘너무 쉬워서 안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시작해야 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루틴을 만들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아침 6시 기상, 1시간 운동, 명상 10분’ 같은 계획은 전두엽에 과부하를 겁니다.”
이 전문가가 권하는 방법은 ‘2분 규칙’이다. 제임스 클리어의 《Atomic Habits》에서 대중화된 개념으로, 새로운 습관을 시작할 때는 2분 이내로 끝낼 수 있는 수준으로 축소하라는 것이다. 책상 정리 습관을 들이고 싶다면, 처음에는 책상 위 펜 하나만 정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2. 시각적 단서를 심어라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의사 결정 중 95%는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대부분의 선택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내리는 게 아니라, 환경이 던지는 단서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결정한다는 뜻이다.
스탠퍼드대학교 BJ 포그(BJ Fogg) 교수는 이 원리를 ‘포그 행동 모델(Fogg Behavior Model)’로 정리했다. 행동 = 동기 × 능력 × 단서(B=MAP)라는 공식이다.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0이면 행동은 발생하지 않는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이 간과하는 요소가 바로 ‘단서(Cue)’다.
“저도 내담자분들께 제일 먼저 권하는 게 환경에 단서를 심는 겁니다. 운동화를 현관문 앞에 두세요. 물병을 책상에 올려두세요. 읽고 싶은 책을 베개 옆에 쌓아두세요.”
이 전문가는 직접 사례를 하나 소개했다. 작년에 만난 40대 직장인 김모 씨는 10년째 금연에 실패한 중독자였다. 그런데 그가 금연에 성공한 방법은 놀랍게도 단순했다. 평소 오른쪽 주머니에 담배를 넣고 다녔는데, 그 주머니에 손이 갈 때마다 만질 수 있도록 동전 몇 개를 넣어둔 것이다. 그는 담배 대신 동전을 만지는 행동을 반복했고, 3개월 만에 담배 없이도 저녁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됐다.
“단서를 없애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나쁜 단서와 좋은 행동을 연결하는 겁니다. 뇌는 단서를 포기하지 않아요. 대신 어떤 행동과 연결할지를 바꿔야 합니다.”
3. 즉각적인 보상을 만들어라 – 미래의 이익은 뇌를 움직이지 못한다
《Nature Communications》에 2025년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6개월 후의 10만 원보다 지금의 1만 원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한다. 이것이 ‘지연 할인(delay discounting)’ 현상이다. 새로운 습관의 대부분은 장기적 이익을 약속한다. 운동은 3개월 후의 건강을, 저축은 10년 후의 노후를 보장한다. 문제는 뇌가 그 먼 미래의 보상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운동 직후에 작은 보상을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좋아하는 팟캐스트는 운동할 때만 듣는다든지, 명상 직후에 향초를 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실제로 듀크대학교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운동 후 5분간 핸드폰 게임을 하는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운동 지속률이 54% 더 높았다. 보상은 즉각적이고 구체적일수록 효과가 크다.
— ‘단서’와 ‘보상’은 알겠다. 정작 중요한 ‘행동’은 어떻게 의지 없이 꾸준히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이 핵심이에요. 바로 ‘습관 쌓기(habit stacking)’ 전략입니다. 이미 자동화된 습관에 새로운 행동을 덧붙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양치질은 대부분의 한국인이 완전히 자동화한 습관이다. 여기에 “양치질 직후 스쿼트 10개 하기”를 붙이는 식이다. 기존의 신경 회로를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습관이 훨씬 빨리 정착된다.
2023년 《Journal of Behavioral Medicine》에 실린 메타분석에 따르면, 습관 쌓기를 활용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습관 유지율이 평균 42% 더 높았다. 이미 굳어진 신경 경로를 활용하는 게 뇌에 훨씬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 초반에 흔들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하루 이틀 쉬면 모든 게 허사가 될까?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 번 쉬었다고 모든 게 무너진다는 생각이 오히려 독입니다. 이것을 ‘완벽주의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런던대학교 랠리 연구에서도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다. 습관 형성 과정에서 하루 이틀 건너뛰는 것은 전체 습관 형성 속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3일 이상 연속으로 건너뛰었을 때 습관이 급격히 약화됐다.
“결국 중요한 건 ‘완벽한 연속’이 아니라 ‘회복 속도’입니다. 한 번 실패했다면, 이틀 연속 실패하지 않는 게 핵심이에요. 그리고 실패한 다음 날에도 아주 작은 버전이라도 실행하세요. 30분 운동 대신 ‘운동복 입고 일어서기’만 해도 괜찮습니다.”
— 처음부터 모든 걸 다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한 번에 한 가지만 바꾸세요. 많은 사람이 1월 1일에 5개의 습관을 동시에 시작합니다. 이건 과학적으로 99% 실패하는 전략입니다. 의지력은 유한한 자원이고, 모든 새 행동은 의지력을 소모합니다.”
미국심리학회(APA)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이 생산성을 40%까지 떨어뜨린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습관 형성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걸 간과한다. 동시에 여러 습관을 만들려는 시도는 각 습관의 정착 속도를 지연시킬 뿐이다.
이 전문가의 충고는 간단하다. 2026년 새해 다짐을 준비하고 있다면 종이 한 장을 꺼내라. 그리고 단 세 가지만 적어라.
1. 내가 가장 자주 있는 공간(집, 직장)의 환경부터 바꾼다.
2. 딱 한 가지 행동만 고른다.
3. 그 행동을 2분짜리로 축소한다.
“이 세 가지가 의지력보다 강력합니다. 뇌를 탓하지 말고, 환경을 탓하세요. 그리고 환경을 바꾸는 데 투자하세요.”
*
이준호 전문가는 서울 소재 행동심리 상담센터에서 근무하며 습관 형성과 행동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관련 논문과 사례는 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습관을 한 번이라도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나?
아니다. 1~2일 건너뛰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랠리 연구에 따르면 하루 누락은 습관 강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3일 연속으로 건너뛰었을 때만 습관이 급격히 약화된다. 중요한 건 연속 기록이 아니라, 실패 후 회복하는 속도다.
Q2: 한 번에 여러 습관을 동시에 만들 수는 없나?
추천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자동화된 행동을 학습하도록 설계됐다. 동시에 3개의 습관을 만들려는 시도는 각각의 정착 시간을 3배로 늘리는 결과를 낳는다. 한 가지가 완전히 자동화된 후(평균 66일), 다음 습관을 시작하라.
Q3: 습관 쌓기(habit stacking)는 꼭 양치질 같은 생활 습관에만 적용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어떤 자동화된 행동이든 활용할 수 있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켠 후”, “점심 식사 후”, “잠들기 전 침대에 누운 후” 등 누구에게나 있는 자동화된 행동을 발판으로 삼으면 된다.
Q4: ‘2분 규칙’이 너무 쉬우면 발전이 더딘 거 아닌가?
처음 2주만 2분 규칙을 적용하고, 이후에는 점진적으로 늘리는 전략을 쓰면 된다. 예를 들어 ‘매일 책상 정리 2분’으로 시작해 3주 차부터는 5분, 5주 차부터는 10분으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정리하며
의지력은 유한한 자원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쓰고, 집중력을 소모한 상태에서 “오늘도 운동할까?”라는 결정을 매일 반복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대신 단서를 심고, 마찰을 줄이고, 즉각적 보상을 만들어라. 당신의 뇌는 환경에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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